
Hidden in the sand
그림 : 가짜이빨님(@H4Ego)
글 : 곽종배님(@nasu_cms1055)
여름을 맞아 해변가 맵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음산하지 않은 분위기만큼은 봐줄만 했으나, 훤히 뚫린 모래밭과 일직선으로 좁은 공간이 살인마를 따돌리기에 적합해 보이지는 않았다. 몇몇 생존자들은 이에 불만을 표시 했으나 시작되는 희생제를 막을 수 없었기에 모두 흩어져 주변을 탐색하는 것을 택했다.
로리가 살던 해든필드는 내륙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는 마을이였다.
주민들 또한 좀처럼 멀리 나가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여름이 되면 바다보다 가까운 수영장으로 향하는 것이 일반적이였다. 이는 그녀의 가족들 또한 마찬가지여서 로리는 다른 생존자들에 비해 바다에 대한 기억이 희미한 편에 속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이곳의 풍경은 그녀에게 강한 기시감을 안겨주었다.
걸을때마다 푹푹 꺼지는 지면, 깔창 안까지 들어오는 모래가 퍽 성가셨지만 반복되는 파도소리에 왠지 모를 편안함마저 느껴졌다.
한편, 희생제가 시작된지 한참이 지나도 살인마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로리는 숨어서 이동하는 것을 멈추고 과감히 해변 위를 거닐기 시작했다. 이제와서는 숨기 불리한 지형조차 주변을 탐색하기에 적합하게 느껴졌다.
순조롭게 발전기를 가동시킨 직후, 주변을 살피자 저 멀리 보이는 풍경에 발걸음이 멈춰 섰다.
해변에 무언가가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였다. 빈사 상태의 생존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급히 다가가자 젖은 모래 위로 건장한 체격의 사내가 쓰러져 있었다.
"이봐요, 정신차려봐요!"
차갑게 젖어있는 몸뚱아리는 미동조차 없었지만 상처없이 깨끗했기에 공격을 당했다기 보다 물에 빠져 실신한 상태에 가까워 보였다.
처음 마주한 상황에 다소 당황한 로리였지만 이곳으로 끌려온 이래, 비상 사태에는 이골이 날만큼 익숙해져 있었다. 그녀는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고 사내의 기도를 확보한 이후, 심폐소생술을 시도했다. 부푼 흉곽을 압박하길 여러번, 손목이 뻐근해질 지경이였으나 사내는 반응조차 보이지 않았다.
방치된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던걸까? 초조해진 마음을 억누르던 로리가 코를 막은채 입을 겹쳤다. 숨을 밀어넣고 가슴팍을 짓누르자 스프링처럼 튀어 오르는 흉곽이 느껴졌다.
몇분이 지나서야 기침 소리가 터져 흘렀고 이에 고개를 들자 천천히 열리는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어둡게 빛나는 검은색 눈동자.
또 다른 동공에는 성애가 낀듯, 탁한 회색 빛이 번들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왼쪽 눈이 다친 상태라는 걸 확인할수 있었다. 꽤 깊은 상처였지만 오래 전에 남은 흉터인듯 아문 흔적이 엿보였다.
"정신이 드나요? 무슨 일이 있었죠?"
"...."
이것저것을 물어보아도 사내는 그저 눈만 끔벅거릴 뿐, 어떠한 답도 꺼내지 않았다. 조금 어리숙해 보이는 것이 머리가 나쁜 것인지 그저 충격을 받아 아무 말도 할수없게 된건지 추측만 할 따름이였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로리는 묻는 것을 포기하고 손을 내밀었다.
"우선 걸으면서 이야기 해요. 한곳에 계속 머물러 있다간 까마귀가 몰려 올거에요."
건장한 몸뚱아리는 그녀가 잡아끈다 한들 도무지 일어날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사내는 손을 붙잡았고 요구에 응하듯 느릿하게 상체를 일으켰다.
이후 두 사람은 한참 동안 해변 위를 거닐었다.
서로 아무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둘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만이 감돌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서 불어온 해안선의 바람이 그들을 스쳐 지나 갔고 로리는 사내의 젖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리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 풍경은 어딘지 모르게 기억 저편에 묻어뒀던 어린 시절의 편린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
때는 여름, 가족끼리 처음 바닷가에 간 날이였다.
어머니는 모처럼의 바캉스를 기념하여 새 수영복까지 사주셨지만 동네 풀장조차 크게 느껴지던 로리에게 처음 마주하는 바다는 너무 크고 무서웠다.
결국 수영복은 입어 보지도 못한 채 모래 성만 쌓고 있을 무렵, 그녀는 성을 꾸미기 위해 해변에 있는 조개를 줍기 시작했다.
스커트 위로 알록달록한 조개들이 한가득 쌓일때 쯤, 너무 멀리 와 버렸다는 사실을 깨닳았지만 저 멀리 보이는 풍경에 시선을 빼앗겨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금가루같이 반짝이는 모래밭 위, 무언가가 아지랑의 열기 속에서 일렁거리고 있었다. 눈썹을 한가득 찌푸려도 따가운 햇살이 시야를 방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조차 할수 없었다.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한 로리가 다가가자 그곳에는 흰 옷을 입은 소년이 쓰러져 있었다.
얼굴은 오랫동안 햇빛을 보지 못한듯 창백했고 젖은 머리카락 아래로는 두 눈꺼풀이 조용히 닫혀 있었다. 만일 안색이 좀 더 밝았더라면 잠시 잠든 것이라 생각 할만큼 평온한 모습이였다.
그러나 로리는 눈을 감은 소년에게서 왠지 모를 불길함을 느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에게 말을 걸어 보았으나 꿈쩍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로리는 곧 소년이 기절한 상태라는 것을 알수 있었다.
다시금 상태를 확인해 보자 물에 푹 젖은 것이 바다에 빠져 의식을 잃은듯 보였다.
어린 로리에게 있어 무척이나 혼란스러운 상황이였지만, 여름 캠프 때 활동했던 걸스카우트에서 비상 사태를 대비해 인공 호흡 메뉴얼을 배운적이 있었다. 그녀는 모범생이였기에 이를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고 이후 침착하게 기억을 더듬으며 소년의 턱을 붙잡기 시작했다.
입술에 묻은 바닷물과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이 뒤섞여 입안에 짠맛이 감돌았다.
숨을 불어넣길 한참이 지나서야 부푼 흉곽이 크게 튀어 올랐고 뒤이어 고래가 등줄기에서 물을 뿜듯, 소년의 입에서 바닷물이 터져 흘렀다.
급히 얼굴을 빼자 눈을 뜬 소년은 허공에서 바다를, 이내 바다에서 로리의 얼굴을 바라보며 시선을 옮겼다.
"괜찮아? 정신이 좀 들어?"
이후 로리는 그에게 이름이 무엇인지, 어디서 온 누구인지를 물어 보았지만 꽉 닫힌 입은 조개마냥 열리지 않았다. 마치 뭍으로 밀려 온 인어 공주처럼,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고있는 소년에게 질릴때쯤, 그녀는 무언가 결심한듯 벌떡 일어나 무릎의 모래를 털기 시작했다.
그가 어디서 온 누군지는 몰라도, 자신이 무엇을 해야할지는 명확해 보였다.
"아마 길을 잃은거지? 네 부모님이 누군지는 몰라도 미아 보호소까지 데려다 줄수 있어."
손을 잡고 이끌자 소년은 의외로 순순히 몸을 일으켰다. 어딘지 모르게 바닥을 끌듯, 굼뜨게 움직이는 느린 발걸음. 그럼에도 착실히 걷는 보폭이 로리에 비해 넓었기 때문에 두사람은 생각보다 빠르게 해수욕장의 입구에 도착 할수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로리는 안전 요원을 발견했고 그에게 말을 걸기 위해 도보로 걸어 나갔다.
하지만 채 몇걸음도 걷지않아 무언가가 자신을 강하게 끌어당겼기 때문에 그녀는 그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멈춰 설수 밖에 없었다.
"마이클!"
뒤따라 성인 남성의 화난 목소리가 이어졌다.
깜짝 놀란 로리가 뒤쪽을 돌아보자 격노한 표정의 사내가 소년의 다른 한쪽 손을 붙잡고 있었다.
"잡았다. 네 이녀석! 잠시 한눈 판 사이에.."
"아저씨는 누구세요?"
말을 잇던 사내는 상당히 흥분한 상태였기 때문에 소년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보지 못한 것 같았다.
로리가 끼어들어 그의 신원을 물을때쯤에서야 사내는 눈앞의 소녀를 인식한듯, 놀란 눈을 치켜떴다.
이후, 그는 붙잡은 둘의 손을 확인 하자마자 화들짝 놀란채로 그들의 사이를 막아섰다. 어느덧 로리의 앞에 선 사내가 염려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의 보호자인가요? 그렇다면 정말 무심하시네요, 이 앤 방금 물에 빠져 죽을뻔 했다고요."
로리는 당찬 목소리로 눈앞의 남자를 책망하기 시작했다. 어른에게 이런 말버릇이 좋지 않다는걸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감안 하더라도 소년을 다루는 사내의 태도가 상당히 올바르지 않다고 느꼈다.
"뭐? 물에... 그게 정말이냐?"
"정말이에요, 저 아래 해변가에서 쓰러져 있던걸요. 숨도 쉬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어요."
사내는 썩 복잡해보이는 표정을 짓더니 로리를 바라보며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그럼 네가 그를 살려준거구나,"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꽤나 모호한 감정이 담겨져 있었다. 그는 그 사실을 진심으로 안타까워 하는 한편, 강한 안도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이후 오랫동안 무언가를 생각하듯, 말이 없던 사내는 미간을 찌푸리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어찌되었든 고맙다, 덕분에 그를 찾을 수 있었어."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감사 인사를 전한 후, 뒤를 되돌아본 사내는 소년을 마주 보았고 이내 한숨을 쉬며 그를 끌고갔다. 그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잔뜩 경직되어 있었기에 어린 아이를 다룬다기 보다 위험물을 운반하는 쪽에 가까워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서 하얀색 유니폼을 입은 남자 두명이 그들을 향해 뛰어왔다.
일반인들에 비해 다부진 몸집을 가진 그들은 상당히 위협적으로 느껴졌으나 어째서인지 연신 쩔쩔매며 소년을 붙잡은 사내에게 사과를 하고 있었다.
사내는 그런 남자들의 모습에 심기가 불편한 듯, 혀를 차더니 시계를 보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이송 중에는 긴장을 풀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젠장... 이러다 시간에 늦겠어."
"연락을 해두었으니 30분까지는 괜찮을겁니다."
"가는데만 40분이야, 재판이 또 무산 되기라도 하면 어쩔건가?"
로리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험악한 분위기에서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들이 정말 소년의 보호자일까? 어쩌면 자신은 그를 더 큰 위험에 빠트린걸지도 몰랐다.
이후 초조한 눈길로 소년을 바라보던 로리는 무언가를 결심한듯, 그들을 향해 걸어나갔다.
사내가 소년을 넘기려는 순간, 로리는 이를 놓치지 않았고 곧바로 소년의 손을 낚아채 빠른 속도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뭣.. 이봐!무슨 짓을!"
당황한 목소리와 함께 자신을 뒤따라오는 남자들의 묵직한 발소리가 들렸지만 뒤를 돌아볼 여유조차 없었다. 어른들의 보폭이라면 곧바로 따라 잡힐 것이 분명했기에 차라리 움직이기 어려운 곳으로 도망가야 했다.
로리는 곧장 사람들이 몰려있는 도보 쪽으로 향했다. 다행스럽게도 그녀의 재빠른 판단은 틀리지 않은것 같았다.
복잡한 인파 속은 소년과 자신이 빠져 나오기 충분했으나 커다란 체구의 남성들에겐 그렇지 못했다. 로리가 저 너머를 바라보자 남자들은 인파에 가로막혀 진입 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가지 간과한 것이 있다면 이곳이 상상 이상으로 북적거린다는 사실이였다.
로리는 아차하는 순간에 소년의 손을 놓쳐버렸고 뒤늦게 이를 눈치 챘지만 이미 그의 손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안돼..잠시만요..!아앗!"
어른들 사이에 끼어 휘적거리는 손이 갈피를 잃은채 허둥거렸다. 이대로 그를 놓쳐 버리는걸까?
왠지 모를 책임감에 심장에 돌이 얹은듯 무거워졌다.
침울해진 로리가 반쯤 포기할때쯤, 누군가 그녀의 팔목을 낚아 채는것이 느껴졌다. 너무 세게 붙잡은 나머지 개에게 물렸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억샌 손아귀는 이내 로리를 좁은 골목길, 어두운 도보의 뒤편으로 끌어 당겼다.
이에 고꾸라지듯 쓰러진 그녀가 천천히 고개 들자 그 앞에는 놓친줄만 알았던 소년이 자신의 팔을 붙잡고 서 있었다.
깜짝 놀란 로리가 그를 부르려 했으나 소년은 그녀의 입을 틀어막은채, 골목 밖의 도로를 응시했다. 소년을 따라 밖을 내다보자 어느새 사람들 틈바구니 속으로 섞여들어 온 남자들이 보였다. 그들은 여전히 자신과 소년을 찾고 있었지만 골목이 너무 어둡고 비좁았던 탓에 이를 발견하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들이 떠난지 한참이 지나서야 로리는 소년의 손을 떼어내고 그를 마주할수 있었다. 소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한채 좀처럼 눈을 떼지 않았다.
그 모습에 어쩐지 부끄러워진 로리는 화제를 돌리듯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저 사람들은 누구야? 방금 곤란했던거 맞지?"
"...."
"아까 그 사람들, 너를 험하게 끌고 가려고 했잖아."
답답한 마음에 재차 물어 보아도 소년은 시종일관 침묵을 유지할 뿐이였다.
일방적인 대화에 지친 로리는 이내 그에게서 어떠한 답도 얻어낼수 없다는 사실을 깨닳았다. 동시에 이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 그리고 믿을만한 어른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함께 알 수 있었다.
"있잖아, 내가 우리 부모님을 데려올게. 그분들이라면 분명 너를 도와주실거야."
이것이 최선이라는듯, 그를 설득해 보았으나 소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팔을 쥔 손에 힘이 실리는것만 같았다.
"다시 만날수 있다고 약속할게, 절대 혼자 내버려 두거나 하진 않을테니까."
그렇게 말하며 소년을 달래자, 붙잡은 손에서 서서히 힘이 풀렸다. 그가 원하는 답은 아니였으나 나름 만족스러운 대답이였던것 같았다.
이에 로리는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화답했고 골목길을 나선 뒤 곧장 부모님에게로 향했다.
그러나 그녀가 다시 돌아왔을 무렵, 그곳에는 도보로 빠져나간 젖은 발자국 이외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로리는 부모님과 함께 경찰서를 찾아가 보았으나 보고된 납치와 유아 실종 신고가 없었기 때문에 그 이상으로 할수 있는 것이 없었다. 스트로드 부부는 속상해 하는 딸을 위해 소년이 무사히 부모님을 찾았을 것이라며 위로했지만 이 조차도 침울해진 그녀의 기분에 크게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본인 또한 어찌할 방법이 없었기에 소년이 그저 무사하길 믿는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그렇게 그때의 괴로운 기억을 덮어두었다.
시간이 지나며 거품처럼 사라진 소년의 존재는 점점 퇴색 되어 갔고 어느덧 기억속에서 완전히 잊혀져 사라져 버렸다.
*
잊어버렸던 기억이 파도처럼 밀려오자 로리는 불현듯 이곳의 풍경이 그날의 바다와 흡사하다는 것을 느꼈다.
더해서 이 청년이 그때의 소년과 똑같은 눈을 하고 있다는 것, 변함 없이 아무것도 대답해 주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닳을 수 있었다.
"저기, 이상한 말 같겠지만.. 오해 하지말고 들어줘요."
우리 혹시, 이전에 같은 곳에서 만난적 있지않나요?
주저하는듯 내뱉은 말에는 묘한 확신이 섞여 있었다.
사내는 눈을 느리게 깜빡일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로리는 그것이 하나의 대답처럼 느껴졌다.
이후 그녀는 무언가를 더 말하려고 했으나 주변의 발전기 소리에 말을 멈추고 귀를 귀울였다.
주변을 살피자 저 멀리서 발전기를 돌리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몸의 절반 이상이 바위에 가려져 있었기에 누구인지 가늠 할수는 없었지만 조용하고 신중한 움직임을 보아 제이크인것만 같았다.
"저 사람.. 제 동료에요. 아마 지금쯤이라면 합류할수 있겠네요."
본의 아니게 말을 돌린 셈이 되었지만 혼자가 아닌 상황에서 이 이상 여유를 부릴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생존에 능숙한 제이크라면 이 어리숙한 남자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것 같았다.
그러나 그를 향해 걸어가려던 발걸음은 곧 우악스러운 악력 앞에서 멈춰섰다.
깜짝 놀라 뒤를 바라보자 사내의 커다란 손이 자신을 붙잡고 있었다.
당황하여 그를 마주 보았지만 사내는 그녀를 풀어주지도, 손을 놓아주지도 않은채 가만히 서서 그녀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 불안하다면 여기에 있어도 괜찮아요. 제가 그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데려올게요."
달래듯 말을 이었으나 사내는 어딘지 모르게 탐탁치 않아 보였다.
그러나 계속되는 그녀의 설득에 생각을 바꾼 것인지 이내 잡은 손에서 힘을 풀었고 이를 승락의 의미로 받아들인 로리는 느슨해진 손을 푼채 제이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불안해지는 마음은 자꾸만 뒤를 바라 보게 만들었다.
다시 곧장 걸어가기 시작 할때 쯤, 마지막으로 본 사내는 그곳에 서서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후 근처에 도착한 로리가 제이크의 이름을 불렀다.
때마침 발전기 수리를 끝낸것인지 소리를 들은 제이크가 그녀를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로리는 그에게 지금까지의 사정을 설명했고 자신이 만난 사내를 소개하기 위해 걸어 왔던 모래 언덕을 손가락으로 가르쳤다.
"무슨 소리야? 저쪽에는 아무것도 안보이는데?"
그의 발언에 고개를 돌리자 자신이 가르킨 방향에는 황량한 풍경만이 펼쳐져있을뿐 아무것도 존재 하지 않았다.
사내는 마치 처음부터 신기루였던 것처럼 발자국조차 남기지 않은채 사라져 있었다.
*
마이클은 절벽 아래의 구석진 해안가에 서서 금발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나부끼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무언가의 환상이라도 본듯, 방금까지 자신이 있던 해변의 모래 언덕을 응시하고 있었다.
마이클 또한 그런 그녀의 모습에서 좀처럼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지만 다가갈 마음은 들지 않는듯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파도가 자신의 발목을 흠뻑 적셔오는 것이 느껴졌다.
축축한 감각에 아래를 내려다보니 바닷물 속, 라텍스 재질의 고무 가면이 물거품 사이로 일렁거리고 있었다. 가면을 주워들자 백색의 인두겹은 소금물에 푹 젖어 번들거리고 있는 상태였다.
다른 이들이라면 찝찝하게 생각했겠지만 그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망설임 없이 가면을 뒤집어 쓰자 들이쉬는 호흡에서 그녀가 건내준 숨의 짠맛이 느껴졌다. 그것을 음미하듯 숨을 들이마시길 여러번, 마이클은 이내 그들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녀와의 약속을 지킬 시간이였다.
후기
가짜이빨님: 좋아하는 게임 합작이기도 해서 재밌었네요. 다들 글연성도 꼭!! 감상하고 가주세요~~! :)
곽종배님:
글 한번도 써본적 없지만 갓그림연성 보고싶어 힘냈습니다.. 후래 글연성은 안보셔도 꼭, 망롤 그림연성 감상하고 가주시길..(전이미 뽑아서 액자에 걸어둠
+여담으로 이 글의 제목은 tallyhall의 노래에서 따왔습니다.
분위기가 참 망롤하니 시간나면 꼭 한번쯤 들어보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