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咨
그림 : 데린이(@DEBADE_GATIHEYO)
글 : 77님(@77_chilchil)
:
咨: 묻다, 탄식하다
왜.
늘 안나의 머릿속을 헤집는 단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어머니가 빌어먹을 커다란 초식동물의 뿔에 찔려 돌아가신 날에도, 그를 본받아 안나의 영역에 침입한 어린 개체들에게 행한 순수한 호의와 보호가 죽음과 멸시라는 대가로 돌아온 날에도.
그러나 그 단어가 자신을 오래 괴롭히진 못했다. 자랑스러운 그만의 커다란 도끼를 휘두르면 됐으니까. 단순함이 주는 안정을 추구하는 행위는 안나가 붉은 빛의 촉수 덩어리에게 선택받아 보다 만족스러운 일상을 영위할 수 있도록 기여했다.
“ ..당신은... 깨뜨려요. ..제가 살아가는.... 방법을.”
희생제가 끝난 후, 자신의 오두막에 도착한 그의 흉터 사이에서 새어나온 듯한 허탈한 웃음에는 명백한 자조가 깔려있었다. 피가 묻은 가면을 팽개치듯 벗어내고 천천히 뒤를 도는 안나의 시야에 잡힌 것은 붉은 머리칼을 늘어뜨린 채로 고통에 찬 신음을 내는 샐리였다. 엔티티의 손을 빌려 속박해놓은 그의 창백한 낯으로부터 시선을 내려 이와 대조되는, 끓어오르다 못해 타버린 왼손을 응시했다. 그가 낮 동안 이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친 발버둥을 마땅히 추측하게 했다.
“풀어줘, 풀어줘. 안나, 풀어줘.”
흐느낌에 가까운 애원과 끊임없이 자유를 갈망하는 몸부림은 닿을 곳을 찾지 못해 오두막 안에서 메아리치며 울릴 뿐이었고 안나는 그저 관조했다. 변명이라도 하듯 달싹이는 입술은 끝내 언어를 내보낼 정도의 너비가 되지 못했다. 대신 ‘왜’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고, 던졌다. 당장이라도 넘쳐흐를 듯한 어둠으로 얼룩진 안와에는 눈물이 대신해 방울져 내렸다. 왜 자신을 챙겨주고, 웃어주고, 정을 줬는지. 자신은 그럴 가치가 있는 이가 아님에도 당신은 온기를 전해줬더랬다. 낯선 몽글거림은 자각하기도 전에 이미 온 몸을 장악한 후였고, 유년기의 정서에 머물고 있는 안나는 끝내 이 감정의 정체를 깨닫지 못했다.
상념 끝에 샐리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자신을 인지한다. 시간에 대한 감각은 이미 무뎌져 있었다. 그럼에도 한참 후라 느낀 순간에 검붉은 피가 덕지덕지 말라붙은, 차갑지만 황홀한 도끼를 왼손에 그러쥔다. 의문은 도끼로 휘둘러 그 근본을 없애면 된다. 그뿐이다.
그는 자신을 체념한 듯 바라본다.
“아가.. 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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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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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과의 둔탁한 충돌음이 연이어 작은 오두막을 울렸다.
“못.. 못하겠어요. 저는 못하겠어요.”
무릎을 꿇고 자신이 죽여왔던 여느 짐승들과 다를 바 없는 상태로 샐리에게 기어간다. 줄줄 흐르는 눈물로 범벅이 되어 바닥을 그에게로 찬찬히 전진한다. 안나를 바라만 보던 샐리는 타버린 제 손을 벌벌 떨며 조금이라도 그에게서 멀어지기 위해 격렬히 움직이지만 엔티티에게 저지되며 미동에 그쳤다.
터질 것만 같은 제 가슴의 박동은 원인이 샐리임을 증명하듯 근접할 때마다 거세진다. 기어코 그의 발치까지 기어가 무릎을 꿇고 절망을 토하며 절규한다.
“흐.. 흐으.. 그. 그냥.. 그냥 나 좀 놔, 놔두지..!”
자꾸만 목이 조여와 끅끅거리며 하염없이 제 목을 긁었다. 떨어지는 눈물이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겠다.
발치에서 어른거리던 그림자는 어느새 실체가 되어 안나의 발목을 휘감으며 올라가 귀에 도달했다. 여러 목소리가 혼탁하게 합쳐진, 기묘한 조소가 들린다.
“거봐, 헌트리스. 자넨 거기까지야. 가둔들 무엇하나, 이리 벌벌 떨 것을? 죽어도 이곳일 텐데 물러터졌군. 소꿉장난은 여기서 멈추게.”
눈 깜짝할 새에 안나와 샐리의 전신을 덮어버린 검붉은 줄기가 그들을 조여오더니 꾸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사라졌을 때엔 작은 먼지조차도 남아있지 않았다.
후기&설명
77님: 사실 보고 싶었던 건 안나와 샐리의 해피한 감금생활.ing 였는데 쓰다보니 이도저도 아닌… 그냥 무언가가 되었네요… 주변에 정서를 안정적으로 케어해줄 만한 어른이 없었고 사회화가 될 만한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던 헌트리스가 끝끝내 자기 마음을 자각 못하고 파괴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기반으로 짤막하게 썼습니다! 서툰 와기토끼 헌트리스와 그걸 지켜보는 너스…(와 엔티티) 부족한 필력이지만 즐감해주셨길 바랍니다… 사실 너스 점멸타고 탈출할 줄 아는데 안했다는게 학계의 정설 아니겠습니까^^ 둘은 찐사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