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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의 사랑

그림 : 서머님(@svwwer)

​글 : 묭뇽님(@Agarigamer)

 

 

엔티티는 더 유능한 살인마를 원했다. 더 잔인한 살인마가 생존자들을 고문하며 자신을 만족시키기를 바랐고, 이내 일부 살인마들을 자신이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기까지 이르렀다. 샐리는 안나와 자신 또한 돌아갈 것을 예감했고, 서로를 만나러 가기로 약속했다.

 

 안나는 너무도 익숙해진 혈향과 낯설어진 추위를 느끼며 눈과 시체가 가득한 숲에서 눈을 떴다. 자신이 엔티티를 만나기 전 죽여버렸던 독일군의 시체는 숲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도끼에 난도질당한 독일군도, 희생제와는 차원이 다른 수의 시체에서 올라오는 짙은 혈향도 안나에겐 전혀 알 바가 아니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이제 현실 속에서, 샐리와 행복해질 수 있다는 사실 하나였다.

 샐리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들뜬 안나는 곧장 미국행을 알아보았다. 영어를 공부했고, 몇 번이고 되새긴 샐리의 집 주소를 수십 번, 수백 번이고 다시 외웠다.

 

 샐리의 집을 본 안나는 참 그녀를 닮은 집이라고 생각했다. 작고 아담한 나무집은 자신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다정함이 깃들어 있었다. 나무집의 문을 두드리자 샐리가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안나는 가슴 깊이 벅차오름을 느끼며 샐리를 끌어안고 빙글빙글 돌았다.

 

 “드디어 만났어! 이제 정말로 행복해질 수 있어!”

 

 그러나 안나의 꿈은 샐리가 한 행동으로 산산이 조각나 버렸다. 당황한 표정으로 그녀를 밀쳐낸 것이다. 샐리의 힘은 안나의 힘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약함에도 불구하고 안나는 그것이 아주 강한 힘이라도 되는 양 쉽게 밀려났다. 안나의 눈에 비친 샐리의 눈동자는 사랑이 아닌 공포를 품고 있었기에.

 

 “당신은 누구죠? 이게 무슨 짓이에요?”

 

 당황으로 가득 차 있던 안나의 눈동자는 차츰 절망으로 물들어갔다. 샐리가 자신을 모른다.

 

 “샐리, 무슨 일이에요? 괜찮…, 당신은 누구죠?”

 

 …안나는 그제야 겨우 상황 파악이 되기 시작했다. 앤드류 스미슨, 죽었다던 샐리의 남편이 살아 있다.

 

 자신과 샐리는 서로 다른 시간에서 살고 있었다.

 

***

 

 안나는 소중한 사람을 잃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자신을 사랑하던 샐리는 지금 없다. 하지만 자신은 여전히 샐리를 사랑한다.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더라도. …설령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더라도.

 

 “…미안합니다. 제가 아는 분과… 착각을, 했어요.”

 “일단…, 들어와서 얘기해요.”

 

 아직은 서툰 영어로 안나는 되도 않는 변명을 내뱉었다. 샐리는 안나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경계를 살짝 풀고 안나를 안으로 들였다.

 

 식탁에 세 명이 둘러앉았고, 서로 통성명을 한 후 샐리가 안나를 향해 말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려주겠어요?”

 

 안나는 조용히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먼 곳에서 왔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고….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서로를 만나러 가기로 약속했습니다.”

 

 안나는 자조적인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방금, 사랑하는 사람이 이제 없다는 걸 알게 됐네요.”

 

***

 

 샐리 스미슨은 덩치 큰 사람이 자신을 안은 것에 순간 두려움을 느꼈고, 바로 그녀를 밀쳤다. 그러나 더듬더듬 말을 내뱉는 그녀의 눈동자가 절망으로 물들었을 때,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아이들이 죽었을 때, 제 표정이 저랬을까.

 

 그래서 샐리는 충동적으로 그녀를 안에 들였다. 마치 방금 소중한 사람을 잃은 듯 절망으로 가득 찬 눈동자는 마찬가지로 소중한 아이들을 잃은지 얼마 되지 않은 샐리의 경계심을 풀었다.

 

 그녀, 안나가 하는 말이 거짓말이라기엔, 변명이라기엔 그녀의 표정이 진실된 절망으로 휩싸여 있었다. 안나는 제 사정을 말한 후 한참을 망설이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창고나 다락방이라도 좋으니, 잠시만이라도 자신을 이곳에 머물게 해주면 안되겠냐고. 이곳에 잠시 머물며 제가 사랑하는 사람의 흔적을 찾고 싶다고. 샐리는 이를 허락했고, 그렇게 안나는 샐리의 집에 머물게 되었다.

 

***

 

 안나와 샐리는 꽤나 빠르게 친해질 수 있었다. 일을 나간 앤드류의 빈자리를 안나가 채워주었고, 안나는 샐리가 도맡았던 잡일을 기꺼이 도와주었다.

 

 비록 샐리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안나는 괜찮았다. 자신이 샐리를 사랑했으니까. 그렇기에 이대로 가족처럼이라도 지낼 수 있기를 소망했다.

 

***

 

 어느 순간, 안나는 깨달았다. 샐리의 남편인 앤드류의 사고가 머지않았다는 것을.

 

 …이대로 앤드류의 사고를 막지 않으면, 자신이 알던 샐리는 돌아올 것이다. 서로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앤드류의 사고를 막는다면, 비록 자신이 아는 샐리는 없겠지만 그녀가 행복하게, 희생제 같은 곳에 가지 않아도 된다.

 

 안나는 자신을 아는 샐리가 보고 싶었다. 하지만 샐리가 샐리 스미슨에서 너스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알았기에 안나는 고뇌할 수밖에 없었다.

 

 아아, 불쌍한 안나. 샐리가 너스가 되지 않는다면, 너는 샐리에 대한 모든 기억을 잃을 거란다. 왜냐니, 당연한 거 아니니? 그 아이가 너스가 되지 않는다면 애초에 너희 둘의 만남은 성립할 수가 없거든. 하지만 말이야, 샐리가 갈수록 미쳐가며, 결국 너스로 거듭날 때까지의 과정을 지켜보는 것보다 괴로운 일이 또 있을까?

 

 어디선가 이 광경을 또 보고 있었던 것인지, 엔티티가 안나의 꿈에 찾아와 속살거린다. 사람들의 고민과 괴로움을 파고들어 더 큰 고통을 주는 것. 엔티티의 특기였다.

 

 안나는 수십 번, 수백 번을 고뇌했다. 하지만 도저히 결정을 내릴 수도,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내놓을 수도 없었다.

 

 샐리의 남편이 죽는 사고가 오늘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은 안나는 결국 그를 살리기로 했다. 앤드류에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그의 직장으로 가지 못하게끔 했다. 앤드류는 살았고, 샐리는 남편이 정신병동에서 일하지 않아도 되었다.

 

 착각이었다.

 

 앤드류는 결국 죽었다. 샐리는 정신병동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샐리가 정신병동 근무를 하게 된 날, 엔티티는 또다시 찾아왔다.

 

 바보 같은 안나. 너는 네가 앤드류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운명은 바꿀 수 없단다. 네가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샐리는 미쳐서 정신병동에 있는 사람들을 죽이고 너스로 거듭나겠지.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안나의 귓가에 울려 퍼진다. 정말이지 잔인한 존재였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실낱같은 희망을 주고는 그것을 산산이 부숴 그 틈새에 절망을 끼워 넣는다.

 

***

 

 정신병동에서 근무하던 샐리는 결국 너스로 거듭났다. 안나는 그 과정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조금이라도,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힘이 되고 싶었다. 너스로 거듭난 샐리는 잔잔히 미소짓고 있었다.

 

 “내가 조금 늦었구나. 미안해, 안나.”

 

 안나는 나긋나긋한 샐리의 말에 뚝뚝 눈물을 흘리며 그녀를 껴안았다. 자신으로 인해 과거는 뒤섞였다. 샐리는 안나 자신이 있던 시간대 또한 기억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샐리는 안나를 사랑한다. 원망하지 않는다. 그저 여느 때와 같이, 샐리와 안나는 사랑하고 있었다.

후기&설명

서머님:

-샐리가 들고 있는 카사블랑카:”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했기에 떠나보냅니다” 행복한 샐리의 삶을 위해 자신과 샐리의 인연을 포기하는 선택지를 상징합니다.

-너스가 들고 있는 버즈푸트:”다시 만날 날까지” 현실로 돌아가 다시 만나고 싶은 헌트리스의 마음을 상징합니다.

-피 묻은 저울과 흐르는 핏방울: 저울은 두 가지 선택지를 의미하며, 흐르는 핏방울은 시간이 촉박함을 상징합니다. 빨간 리본은 두 사람의 인연을 의미해요!

-하얀 눈밭 배경: 작중에서 안나는 결국 샐리의 행복을 선택했고-–비록 엔티티에 의해 선택이 무시됐지만요—자신이 돌아갈 러시아의 차가운 눈밭과 괴로운 마음을 상징합니다.

몽뇽님: 정말… 한달 전에 완성해놓고 마감 40분 전에 후기를 쓰고 있네요… 고민도 많이 했고 몇 번이고 마음에 안 들어서 갈아 엎을까 고민하다 뇌에 힘주고 참기를 반복하면서 얼레벌레 완성지었네요ㅎㅎ… 멋진 페어제 합작 열어주신 주최진분들 사랑하구요… 얼레벌레인 제 글에 간지작살나는 그림 완성해주신 섬머님 애정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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